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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 테러 2년… 다시 집밖으로 나가 봅니다

얼굴 되찾은 박선영씨…

"화장만 하면 이제 집 밖에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가가성형외과. 얼굴 전체를 가렸던 마스크를 내린 박선영(29)씨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박씨의 눈가엔 이내 눈물이 고였다. 화상(火傷) 후유증이 아직은 남아 있지만 2년 전 '그 사건'의 악몽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박씨는 자기 얼굴을 잊고 살았다. 박씨는 2009년 6월 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에서 일어난 '황산(黃酸) 테러사건'의 피해자다. 여느 날처럼 출근하던 박씨는 갑자기 다가온 낯선 사람들이 끼얹은 황산에 얼굴과 목덜미, 가슴, 팔 등 온몸의 4분의 1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박씨가 잠시 다니던 회사의 사장 이모(30)씨와 사장의 지시를 받은 직원들이었다. 박씨가 사장을 상대로 밀린 임금 등 4000만원을 달라며 소송을 내자 직원들을 시켜 황산액 800mL를 끼얹은 것이다.

생명은 건졌지만 고왔던 얼굴과 몸은 새까맣게 탔다. 오른쪽 귀는 황산에 녹아내려 흔적만 남았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된 박씨는 이후 두 달간 5차례나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죽은 피부를 긁어낸 뒤 허벅지 살을 이식하는 고통스러운 수술이었다. 박씨는 "죽은 살을 긁어 내는 치료를 받을 때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했다.

영혼도 검게 타들어갔다. 박씨는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이 너무 두려웠다"며 "악몽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 2년 동안 병원에 갈 때를 빼곤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한 번은 병원 엘리베이터에 낯선 사람과 단둘이 탔다가 온몸이 얼음장처럼 굳어버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못한 적도 있었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이사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형편 탓에 그러지도 못했다. 공사장에서 살수차(撒水車)를 모는 아버지의 수입이 전부인 박씨 가족은 보증금 2300만원짜리 43㎡ 전세방에 세 식구가 함께 산다.


그랬던 박씨에게 요즘 새 희망이 생겼다. 박씨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가가성형외과 박동만(50) 원장이 지난 4월과 5월 박씨의 피부 이식 수술을 무료로 해줬다. 앞으로 10차례 넘게 해야 할 추가 수술도 모두 책임지기로 했다. 박 원장은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선영씨 때문에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박씨의 형편을 전해 들은 회사 직원들도 2000만원을 모았고,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 등 시민단체들도 힘을 보탰다.

박씨도 치워 버렸던 거울을 다시 걸고 얼굴 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박씨는 "이식한 피부가 땅겨 터질까봐 꼼짝 못하고 누워 있다 보니 오히려 이 상황을 꼭 벗어나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고 했다.

작년 봄부터는 사이버대학에서 상담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작년부터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가 운영하는 '스마일센터'에서 심리상담 치료를 받은 게 계기가 됐다. 자신 같은 피해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심리상담사가 되는 것이 박씨의 꿈이다.

박씨에게 황산을 끼얹은 가해자들과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회사 사장 이씨는 작년 11월 징역 15년 확정 판결을 받았고, 이씨의 지시를 받고 직접 범행을 저지른 직원들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을 상대로 한 민사 손해배상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