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나부인(貫那夫人)「 ? ~ ? 」 "서해로 흘러간 장발 미인" 〔고구려 중천왕〕
관나부인은 얼굴이 아름답고 두발이 길었다고《삼국사기》에서 전한다. 관나부인이 왕의 총애를 받게 되자, 이를 시기한 왕후 연씨(椽氏)는 "지금 위(魏)나라에서 천금을 주고 장발을 구한다 하니 장발미인을 위나라에 보내면 다시는 우리 나라를 침범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여 관나부인을 위나라로 보내려고 하였다. 이것을 들은 관나부인은 왕에게 "왕후가 나를 가죽 주머니에 넣어 바다에 버리려고 하니 집에 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라며 왕후를 참소하였다. 하지만 왕은 그 사실이 거짓임을 알고 정말로 관나부인을 가죽 주머니에 넣어 서해(西海)에 던져버렸다.
2. 도미(都彌)의 처(妻)「 ? ~ ? 」 "일편단심 민들레" 〔백제 개루왕〕
도미의 처(이하 처)는 백제 개루왕 때의 평민으로, 미인인데다가 절개가 굳기로 유명했다고 《삼국사기》와 함께 《도미설화》에서 전하고 있다. 설화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도미의 처가 미인이며 절개가 굳다는 소문을 들은 개루왕이, 처의 절개를 시험하기 위해 그녀와의 동침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처는 여종을 변장시켜 대신 내보냈고, 화가 난 개로왕은 도미의 두 눈을 뽑아버렸다. 이제 개로왕과의 동침을 더이상 피할 수 없게 되자, 끝내 거부하며 남편 도미와 함께 고구려로 도주하였다고 한다.
3. 미실(美室)「 549 ~ 606 」 “삼대(三代)를 쥐고 흔든 색(色)” 〔신라 진흥왕~진평왕〕
미실은 제2세 풍월주 미진부(未珍夫)의 딸로 절세의 미모와 절정의 색공(色功)을 갖춘 음녀(淫女)로 《화랑세기》는 전한다. 맨 처음 지소태후와 이사부 사이에서 태어난 '세종'에게 시집을 간 뒤, 화랑 사다함과도 정분을 나누었으며 진흥왕과 동륜태자, 금륜태자(진지왕) 3부자와 모두 연을 맺었다.
신라에서 내로라하는 사내들과 모두 정을 통한 미실은 자연히 천하의 권세를 쥐었다. 신라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진흥왕까지도 미실과의 색사 끝에 4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고 하니, 가히 미실의 미색을 알 만하다.
4. 선화공주(善花公主)「 ? ~ ? 」 "국경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 〔신라 진평왕〕
선화공주는 진평왕의 셋째 딸로서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다고 《삼국사기》와 함께 《서동요》에서 전한다. 선화공주를 연모한 서동(薯童)은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선화공주를 참소하는 서동요를 지어 퍼뜨렸다. 이윽고 동요가 금성 내에 퍼지자 진평왕은 선화공주의 행실이 부정하다 하여 귀양을 보내게 되는데, 이 때 선화공주는 서동을 만나 결혼하였다. 이후 서동은 백제 무왕(武王)의 위에 오르게 되었고, 선화공주는 황후로 추대되었다.
5. 수로부인(水路夫人)「 ? ~ ? 」 "동해의 아프로디테" 〔신라 성덕왕〕
수로부인은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미인으로, 신라 향가 해가(海歌)와 헌화가(獻花歌)의 주인공이다. 이 중 '해가'의 내용에 따르면 수로부인은 용모가 세간에 견줄 이가 없어, 용에게 납치된 것을 시작으로 깊은 산이나 못을 지날 때면 갖가지 신물(神物)들에게 붙들림을 당했다고 한다. 또 '헌화가'에서는 한 늙은이가 천길이나 되는 바위 위에서 철쭉꽃을 꺾어다 주었다고 전하고 있다.
6. 기황후(奇皇后)「 ? ~ ? 」 "대륙을 호령한 미색(美色)" 〔고려 충숙왕~공민왕〕
기황후는 고려 사람 자오(子敖)의 딸로서 공녀의 신분으로 원나라에 건너간 뒤, 제2황후에까지 책봉된 미녀이다. 1333년 공녀로 원에 바쳐져 원실의 궁녀가 된 기씨는 원 순제의 총애를 받으며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339년 기씨가 황태자 아이유시리다라(愛猷識里達獵)를 낳자 이듬해 제2황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1366년 명을 건국한 주원장에게 연경이 함락되자, 기황후는 몽골 내지로 쫓겨갔고 그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7. 어우동(於于同)「 ? ~ ? 」 "조선시대 스캔들의 헤로인" 〔조선 성종〕
어우동은 본래 양반집 자제로 성은 박씨(朴氏)이며 종실 태강수(泰康守)의 아내였다. 하지만 어우동은 천하의 색녀(色女)로 수십명의 조관이나 유생들과 난잡한 관계를 가졌다. 그러나 이 같은 방탕한 생활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 하여 결국 사형되었다. 《대동시선》에 <부여회고>라는 시가 전하고 있다.
8. 장녹수(張綠水)「 ? ~ 1506 」 "폭군을 조종한 궁녀의 치맛바람" 〔조선 연산군〕
장녹수는 본래 제안대군(齊安大君)의 여종이었지만 용모가 뛰어나고 가무에도 능해 연산군에게 총애를 받으면서 숙원(淑媛)에 봉해졌다. 하지만 장녹수가 왕의 총애를 이용하여 국사에 간여하여 연산군의 실정(失政)을 부추기자, 뒤이어 일어난 중종반정으로 참형을 받았다.
9. 황진이(黃眞伊)「 ? ~ ? 」 "명기인가 시인인가 송도 삼절인가" 〔조선 중종〕
황진이는 진사(進士)의 서녀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을 읽고 시, 서, 음률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게다가 용모또한 출중하여 동네 총각이 황진이를 연모하다 상사병(相思病)을 앓다 죽었는가 하면, 살아있는 생불(生佛)이라 추앙받던 지족선사(知足禪師)의 10년 공든탑을 무너뜨리고 파계(破戒)시키기도 하였다.
황진이는 서경덕, 벽계수 등 당대의 일류명사들과 교류하며 《만월대 회고시(滿月臺懷古詩)》《박연폭포시(朴淵瀑布詩)》《봉별소양곡시(奉別蘇陽谷詩)》《영초월시(咏初月詩)》등 수많은 작품과 시조를 남겼다. '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녀의 대표적인 시조이다.
10. 장희빈(張禧嬪)「 ? ~ 1701 」 "피로 물들인 궁중 비사" 〔조선 숙종〕
희빈 장씨는 본래 소의(昭儀)의 신분에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식을 보지 못한 숙종의 총애를 받아 원자 균(훗날 경종)을 낳으며 희빈으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 사사되고 남인이 집권하자,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서인이 재집권에 성공하자, 인현왕후 민씨가 복위되며 장씨는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이를 시기한 장희빈이 밤마다 저주를 내렸는데, 이 사실이 발각되어 사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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