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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사회 비판한 김벌래씨



"일에 대한 소신으로 평가하는 사회 돼야"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저에게도 학벌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대학을 나온 게 아니라 지금은 폐교된, 국립체신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지요. 저 핍박 많이 받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고등학교 나온 사람들은 맥을 출수가 없습니다. 학벌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음향의 달인', '광고 소리의 대부'로 불린다는 김벌래(본명 김평호ㆍ66)씨가 저서 '제목을 못 정한 책'(순정아이북스)을 통해 학벌 위주 사회에 거침없는 쓴소리를 내뱉었다.

김씨는 1970-1980년대 만들어진 여러 광고에서 다양한 소리를 선보였고, 만화영화 '로봇 태권브이'의 음향작업을 담당했으며,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올 올림픽, 2002년 월드컵 및 대전엑스포 등 여러 대형 이벤트에서 사운드 연출과 제작을 맡았다.

이번에 낸 저서에서 그는 "그까짓 이름, 제목, 완장, 명예, 지위 따위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 것"이라며 책 이름을 '제목을 못 정한 책'으로 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엘리트라 불리는 소수가 학벌로 다수를 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학벌은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권력이자 신분이며 끈끈한 사회적 관계"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올림픽 폐회식에서 울려퍼졌던 다듬이 소리에 얽힌 일화를 털어놓으면서 "예술 좀 하자는데, 웬 학벌의 노예들은 그리 많은지"라고 중얼거렸다.

당초 다듬이 소리를 쓰려던 그의 계획에 "일부 학벌 있는 인사들"이 반대를 표시해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소리까지 만들어놓았지만, 실제 행사에서 "문제가 되면 이민이라도 가자"고 마음 먹고는 다듬이 소리를 틀었다고 한다.

현재 홍익대 광고홍보학부 겸직교수인 그는 "내가 대학 강단에 선 것이 어언 17년이다 보니, 학벌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이 바로 강단에 서는 사람들이란 것도 알았다"며 "학벌이란 말 자체에 공부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있는 걸 보면 '배운 사람들이 더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고 적었다.

그는 어느 사회나 계급이 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학벌 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핍박한다며 "이런 세태를 만든 것은 못 먹고 못 살던 시대에 열심히 공부하라고 가르친, 그런 분위기에 휩쓸린 우리 또래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확 정신을 차려서 학벌보다는 자신의 일에 소신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로 평가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능올림픽에서 한국이 항상 좋은 성적을 내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루 이틀 지나면 그런걸 잊어버려요. 서울대 출신이 용접한 것도 아니고, 연세대 출신이 망치 잡은 게 아니잖아요. 이제 뭣 좀 하려 하면 그 학위가 있네 없네 그런거 따지지 말고 일에 대한 소신으로 평가합시다."

그는 자신이 연극판을 누빌 때 연극인 고(故) 이해랑이 붙여준 별명 '벌레'를 '벌래'로 고쳐 예명으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