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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혁·강마에는 있는데 '김명민'은 없다?

김명민은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루게릭병에 대한 서적들을 섭렵했다.
ⓒ MBC 화면캡쳐
연기자들은 "스타보다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을 인터뷰에서 곧잘 하곤 한다. 만인의 우상이지만 한순간 짧게 빛나다 어느 순간 잊혀지는 별보다는, 긴 생명력으로 꾸준하게 사랑받는 배우가 되겠다는 그들의 당찬 소망. 그러나 그 말에 어울리는, 그럴 만한 배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배우 김명민. SBS 공채 탤런트 6기 출신. 180cm에 72kg. 기사를 쓰기 위해 그에 대한 것을 조사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된 그의 체중이 58kg이었던 것이다. 180cm의 키에 58kg이라니,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김명민에게 가당키나 한 체중인가.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풀렸다. 지난 12일 방영한 <MBC스페셜>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에서, 72kg의 체중을 50kg대까지 감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김명민을 만날 수 있었다.

카메라 안에서 그는 살을 빼고 있었다.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고, 미용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가 새로 시작한 작품 속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빼는 것이었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그가 맡은 역은 루게릭병을 앓는 '백종우'라는 인물. 체내에 근육이 위축되고 없어지면서 운동능력이 감소되고 사지가 마비되는 루게릭병을 앓는 환자를 연기하려고, 김명민은 살을 빼고 있었다.

처음에는 밥의 양을 줄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식사 때면 언제나 밥그릇에 담긴 밥을 반 이상 덜어내어 매니저에게 주고 반찬은 가급적 적은 양만 섭취했다. 그렇게 얼마 간 살을 뺀 이후에는 탄수화물 섭취 자체를 최소화했다. 두부 같은 식물성 단백질과 방울토마토 같은 채소 위주의 식사. 과일도 당도가 높은 것은 피했다. 그렇게 처절하게 다이어트를 한 결과 촬영 시작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그의 체중은 10kg이 빠져 있었다.

몰라보게 야윈 팔다리, 살이 하나도 없이 움푹 패여 가는 얼굴, 발을 옮길 때마다 휘청거리는 걸음, 스태프들의 우려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김명민 그 자신도 "이렇게까지 살을 빼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살을 뺐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김명민은 새 작품을 들어갈 때면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늘 약을 달고 산다.
ⓒ MBC 화면캡쳐

"무조건 말려야 해요.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근육이 없어지는 병에 걸린 환자를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이 영화의 의미가 없어지거든요.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가 죽어가면서, 그 안에서 이뤄지는 사랑 이야긴데, (살을 못 빼면) 본질에 아예 접근을 못해버리는 거죠."

배우 김명민, 그를 겪은 사람들은 그에 대해 얘기할 때 모두들 하나같이 혀를 내두른다. 찬란하게 빛나는, 연기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에 대해서일까? 아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미리 짜기라도 한 듯 똑같았다.

"촬영장에서 NG를 거의 안 내요. 그야말로 장준혁 그 자체인 거죠."(이선균, <하얀거탑> 출연)

"캐릭터와 장면에 맞게 너무나 디테일하게 준비해오니까 속으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였죠."(한상진, <하얀거탑> 출연)

"촬영장에선 항상 대본을 들고 있어요. 그 집중력에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죠."(장근석, <베토벤 바이러스> 출연)

연기에 대한 강한 집념,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챙기는 디테일함, 손에서 대본을 놓지 않고 언제나 연습에 매진하는 그 성실함, NG를 거의 내지 않는 완벽성, 동료 배우로부터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모두 김명민에게 향한 것이었다. 그러한 찬사는 배역에 완벽하게 몰입한 김명민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노력은 언제나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2007년 <하얀거탑>은 '장준혁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정치적이며, 때론 비열하기까지 한, 환자보다는 그 자신의 영달이 우선인 '악역' 장준혁은 시청자로부터 손가락질 받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사람들은 장준혁에 공감하고 그의 성공을 기뻐하며 불행은 안타까워했다. 도리어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선한 캐릭터들이 공분을 사는, 희한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 장준혁 신드롬은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어느새 '장준혁'은 야망과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는 인물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이름이 되어 있었다.

이후 2008년 <베토벤 바이러스>는 또 한 번, 우리 사회를 '강마에 신드롬'으로 들끓게 했다. 오케스트라라는 생소한 소재, 통속극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을 상대로 한 무모한 시도였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드라마는 성공했다. 그것도 송일국, 문근영, 박신양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마에 덕분이었다. 괴팍하고 짜증스러운 스타일에 입만 열면 독설을 한 바가지씩 퍼붓는 비호감 캐릭터인 강마에에, 대중은 열광했다.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를 연기하기 위해 김명민은 10kg이 넘게 살을 뺐다.
ⓒ MBC 화면캡쳐

악역을 연기하면서 대중에게 사랑받기란 쉽지 않다. 드라마를 하면서 악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언제나 그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주인이 밥을 적게 준다든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등쌀에 가족과의 외출을 포기했다든지 하는 에피소드는 산더미 같다. 그런데 김명민이 연기한 악역들은 사랑받았다(좀 더 정확히 하자면 강마에는 악역이라기보다는 비호감에 가까운 캐릭터였다).

그 까닭은 그의 연기에 있었다. 수술이면 수술, 지휘면 지휘, 주어진 전문 영역의 장면을 치열한 노력으로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가 빠져들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매력적이었다. 거기에 더해지는 그만의 내면 연기는 시청자의 감정이입과 공감을 충분히 이끌어냈다. 성공하고자 발버둥치는 장준혁의 모습에, 겉으로는 쌀쌀맞지만 속에는 애정이 가득한 강마에의 모습에 사람들은 울고 웃었다.

'연기는 연기일 뿐, 작품 속 캐릭터는 나 자신이 아니다'는 연기론을 가진 배우가 있는가 하면, '연기는 나 자신이 작품 속 캐릭터가 되는 과정'이라는 연기론을 가진 배우도 있다. 김명민은 여기에서 후자에 속하는 배우다. 배역에 완벽하게 몰입함으로서 곧 자신을 버린다. 그리하여 장준혁 신드롬과 강마에 신드롬은 있지만 결코 김명민 신드롬은 없다.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는 제목은 이 모든 말을 압축하는 단 하나의 표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