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편에서 이어짐 ▶별명은 햇병아리, 깡순이
-고등학교를 자퇴한 건 후회하지 않나요?
"할 수 없죠. 교칙상 더 봐줄 수 없다며 빨리 귀국하라고 했지만 일본 공연 일정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졸업장을 포기했어요. 그때 상실감을 달래려고 '그래 서태지 선배의 뒤를 잇는 거야'라며 합리화했던 기억이 나요."
그는 휘경여고 1학년 때 자퇴한 뒤 검정고시로 고교 학력을 인정받았다. 그후 자기추천 수시전형으로 2007년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에 진학했다.
-평소 일본어 공부는 어떻게 했어요?
"다행히 중학교 때 제2외국어로 일어를 배웠어요. 일본에선 통역이 있었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도움을 받았고요. 하루 종일 TV 보고, 음악 들으면서 문장을 통째로 외웠어요. 밥 굶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반복했더니 어느날부터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비자 문제는 없었습니까.
"처음엔 세 달에 한번씩 한국에 와야 했어요. 그러다 1년짜리 흥행비자를 받았죠. 근데 규제가 좀 까다로웠어요. 어느 정도 규모가 안 되는 공연엔 참가할 수 없었는데 심지어 우정출연, 길거리 공연도 제약을 받았어요. 그러다 한국 활동 기간 2년을 채워서 이제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어요."
-한국과 일본 노래를 부를 때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요?
"아무래도 한국 노래는 감정 표현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데 일본 노래는 그게 좀 어렵죠. 발성이 다르지만 발음하는 건 오히려 일본 노래가 더 쉬워요. 그리고 일본 기획사에서 일본 가사 밑에 한글을 적어놓지 못하게 했는데 이게 빨리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힘들어서 운 적은 없나요?
"제가 깡이 좋아서 거의 안 울었는데 2집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울었어요. 너무 힘들어서요. 사실 어제도 밤 꼬박 새우고 오늘 아침 8시에 작업이 끝났거든요.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앨범이라 더 각별하게 와닿아요."
-일본 스태프들한테 혼날 때는 어땠어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지만 '해볼테면 해봐'하는 심정이었어요. 일방적으로 혼나면 '나도 한국에선 귀한 집 자식인데 이러면 안 되지'라며 맞받아치고 그랬어요. 저랑 많이 부딪쳤던 분이 B형이고 자녀까지 있는 스태프였는데 제 자존심 건드릴 때마다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지금은 너무 친해졌죠.(웃음)"
▶할아버지 유언으로 가수 허락 받아
-경제 감각은 어떤 편인가요?
"젬병이죠. 한번은 엄마가 일본에 오셨다가 용돈으로 5000엔(5만원)을 주고 가셨어요. 근데 저는 그 돈이 한 50만원쯤 되는 줄 알고 혼자 당당하게 회전 초밥집에 갔다가 돈 모자라는 줄 알고 황당해한 적이 있어요. 엄마가 아껴쓰라고 신신당부해서 거액인 줄 알았던 거죠. 도큐핸즈 같은 문구매장에 가서 당장 필요없는 물건도 많이 샀어요. 공책, 스탬프, 스티커 모으는 걸 좋아했거든요."
-2집 앨범 '썸데이(Someday)'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요즘 사람들이 끈기가 없잖아요. MP3 발달로 스킵(Skip·건너뛰기)해서 음악을 듣는데 전곡을 차례대로 들을 수 있도록 스토리를 담아봤어요. 초등학교 때 테이프로 음악을 들을 때는 뒷면을 들으려면 앞면을 다 들어야 했잖아요. 참, 이번 타이틀곡 '텔레파시'는 5번에 배치했어요. 뭐 그렇다고 고생을 알아달라고 어리광 부리고 싶진 않아요. 평가는 팬들이 해주는 거니까요."
-부모님은 어떤 분입니까.
"7년 사귄 캠퍼스 커플이셨고, 아빠가 대학에서 통기타 동아리 창립 멤버셨대요. 지금도 가끔 제 공연장에 오셔서 '아빠 잘 계시지'라고 묻는 분도 계세요. 처음엔 제 가수 활동을 반대하셨는데 중학생일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윤하 하고 싶은 일 하게 내버려두라'는 유언을 남기셨어요. 할아버지 덕분에 가수가 된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당차요. 하지만 어떤 날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날도 있죠. 그럴 땐 친구들이나 매니저 언니, 오빠한테 전화해요."
-SM이나 JYP, YG 같은 큰 기획사에 못 간 걸 후회하진 않나요? 더 쉽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잖아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겠죠. 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데뷔했거나 제가 쓴 곡을 존중받지 못할 가능성도 높죠. 오디션 볼 때마다 저는 다 붙을 줄 알았어요. 제 실력을 너무 맹신한 거죠. 너무 떨어지다 보니까 어느 시간대, 어느 심사위원의 점수가 후하다 같은 정보까지 알게 되더라고요."
-최악의 굴욕적인 경험은 뭡니까.
"오디션에서 떨어져 쓸쓸하게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한 매니저 분이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놓고 그 앞에서 포즈를 잡아보라고 한 적이 있어요. 이게 뭐하는 건가 싶어서 그만뒀는데 얼마 전 그 매니저를 우연히 다시 만났어요."
-고등학교를 자퇴한 건 후회하지 않나요?
"할 수 없죠. 교칙상 더 봐줄 수 없다며 빨리 귀국하라고 했지만 일본 공연 일정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졸업장을 포기했어요. 그때 상실감을 달래려고 '그래 서태지 선배의 뒤를 잇는 거야'라며 합리화했던 기억이 나요."
그는 휘경여고 1학년 때 자퇴한 뒤 검정고시로 고교 학력을 인정받았다. 그후 자기추천 수시전형으로 2007년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에 진학했다.
-평소 일본어 공부는 어떻게 했어요?
-비자 문제는 없었습니까.
"처음엔 세 달에 한번씩 한국에 와야 했어요. 그러다 1년짜리 흥행비자를 받았죠. 근데 규제가 좀 까다로웠어요. 어느 정도 규모가 안 되는 공연엔 참가할 수 없었는데 심지어 우정출연, 길거리 공연도 제약을 받았어요. 그러다 한국 활동 기간 2년을 채워서 이제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어요."
-한국과 일본 노래를 부를 때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요?
"아무래도 한국 노래는 감정 표현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데 일본 노래는 그게 좀 어렵죠. 발성이 다르지만 발음하는 건 오히려 일본 노래가 더 쉬워요. 그리고 일본 기획사에서 일본 가사 밑에 한글을 적어놓지 못하게 했는데 이게 빨리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힘들어서 운 적은 없나요?
"제가 깡이 좋아서 거의 안 울었는데 2집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울었어요. 너무 힘들어서요. 사실 어제도 밤 꼬박 새우고 오늘 아침 8시에 작업이 끝났거든요.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앨범이라 더 각별하게 와닿아요."
-일본 스태프들한테 혼날 때는 어땠어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지만 '해볼테면 해봐'하는 심정이었어요. 일방적으로 혼나면 '나도 한국에선 귀한 집 자식인데 이러면 안 되지'라며 맞받아치고 그랬어요. 저랑 많이 부딪쳤던 분이 B형이고 자녀까지 있는 스태프였는데 제 자존심 건드릴 때마다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지금은 너무 친해졌죠.(웃음)"
▶할아버지 유언으로 가수 허락 받아
-경제 감각은 어떤 편인가요?
"젬병이죠. 한번은 엄마가 일본에 오셨다가 용돈으로 5000엔(5만원)을 주고 가셨어요. 근데 저는 그 돈이 한 50만원쯤 되는 줄 알고 혼자 당당하게 회전 초밥집에 갔다가 돈 모자라는 줄 알고 황당해한 적이 있어요. 엄마가 아껴쓰라고 신신당부해서 거액인 줄 알았던 거죠. 도큐핸즈 같은 문구매장에 가서 당장 필요없는 물건도 많이 샀어요. 공책, 스탬프, 스티커 모으는 걸 좋아했거든요."
-2집 앨범 '썸데이(Someday)'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요즘 사람들이 끈기가 없잖아요. MP3 발달로 스킵(Skip·건너뛰기)해서 음악을 듣는데 전곡을 차례대로 들을 수 있도록 스토리를 담아봤어요. 초등학교 때 테이프로 음악을 들을 때는 뒷면을 들으려면 앞면을 다 들어야 했잖아요. 참, 이번 타이틀곡 '텔레파시'는 5번에 배치했어요. 뭐 그렇다고 고생을 알아달라고 어리광 부리고 싶진 않아요. 평가는 팬들이 해주는 거니까요."
-부모님은 어떤 분입니까.
"7년 사귄 캠퍼스 커플이셨고, 아빠가 대학에서 통기타 동아리 창립 멤버셨대요. 지금도 가끔 제 공연장에 오셔서 '아빠 잘 계시지'라고 묻는 분도 계세요. 처음엔 제 가수 활동을 반대하셨는데 중학생일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윤하 하고 싶은 일 하게 내버려두라'는 유언을 남기셨어요. 할아버지 덕분에 가수가 된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당차요. 하지만 어떤 날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날도 있죠. 그럴 땐 친구들이나 매니저 언니, 오빠한테 전화해요."
-SM이나 JYP, YG 같은 큰 기획사에 못 간 걸 후회하진 않나요? 더 쉽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잖아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겠죠. 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데뷔했거나 제가 쓴 곡을 존중받지 못할 가능성도 높죠. 오디션 볼 때마다 저는 다 붙을 줄 알았어요. 제 실력을 너무 맹신한 거죠. 너무 떨어지다 보니까 어느 시간대, 어느 심사위원의 점수가 후하다 같은 정보까지 알게 되더라고요."
-최악의 굴욕적인 경험은 뭡니까.
"오디션에서 떨어져 쓸쓸하게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한 매니저 분이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놓고 그 앞에서 포즈를 잡아보라고 한 적이 있어요. 이게 뭐하는 건가 싶어서 그만뒀는데 얼마 전 그 매니저를 우연히 다시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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