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2군리그가 이번 주말 막을 내린다. 시즌 종료를 5일 앞둔 지난 4일 한때는 잘나가는 거포였던 2군선수를 만났다. ‘마이너’에서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그의 연봉은 무려 4억원(1군 엔트리에서 빠져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절반만 받는다). 아주 특별한 2군선수 생활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그는 다시 ‘메이저’로 올라가거나 아니면 유니폼을 벗을 것이다. 어쨌든 2군은 아니다.
LG 마해영(37)의 사복 차림은 의외로 자연스러웠다. 올시즌 1군 경기에 11번 나갔고. 그 가운데 4번은 중간에 교체된 그에게서 고려대와 상무. 롯데와 삼성의 4번타자 이미지를 되살리기는 어려웠다. 최근 4년간 밥먹듯 2군에 내려간 기억들이 또렷할 뿐이었다. 자신의 야구인생을 돌이킬 시간이 충분했던 까닭일까. 한시간 남짓 풀어놓은 그의 이야기는 항변이나 변명이 섞여있기는 했지만 분명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먹튀’? 맞다! 하지만…
그는 2003년 말 FA(프리에이전트)로 4년간 27억원이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그리고 4년. 그를 인정해준 KIA와의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LG로 트레이드됐고. 지금은 그를 필요로 했던 LG도 기대를 접은 상태다. “본의 아니게 ‘먹튀’가 됐어요. 그런데 보통 ‘먹튀’라고 하면 부상을 숨기고 돈을 많이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어디가 크게 아프더라. 뭐 이런 거잖아요. 몸은 멀쩡한데 몸값을 못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해요.” 시즌 개막 17일만인 지난 4월23일 2군으로 내려와 처음에는 경기에 나섰다. 그런데 2주 정도 지난 뒤부터는 2군에서조차 훈련만 하는 선수가 됐다. “구단에서 어느 정도 저에 대한 판단을 내린 것 같아요. 사실 FA 되고나서 4년 동안 한번도 풀타임으로 뛰어본 적이 없어요. 물론 못치니까 그랬지만 제 입장에서 보면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한 것이 아쉽고.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까워요. 몸상태나 파워가 아직까지는 별로 떨어지지 않았는데 나이가 많다든지 배트 스피드가 떨어졌다든지 하는 평가는 너무 이른 것 아닌가요.”
그의 항변에 따르자면 기나긴 슬럼프의 이유는 ‘구단과 감독이 기다려주지 않은 것’이다. 뛰어난 성적을 올렸던 삼성에서는 김응룡 감독이 한달에 안타 1~2개를 쳐도 계속 경기에 내보냈다. 몇경기 부진하더라도 출전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KIA와 LG에서는 ‘한 두 경기 못치면 빠진다’는 불안감에 심리적으로 쫓기게 됐다는 것이다. “KIA도 그렇고 LG도 그렇고 팀 성적이 나쁘니까 세대교체를 하게 됐어요. 자연히 제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죠. 돈 많이 받는 선수가 못하니까 구단이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실력이 뒤졌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등을 떠밀린 거죠.” 그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니라는 것의 의미를 절감했다고 한다. 주니치에서 뛰고 있는 이병규가 LG에 있었을 때 시즌 전반기 내내 2할대 타율에 머물러도 2군에 내려가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올시즌이 끝난 뒤 LG가 자신과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재계약이 된다고 해도 지금의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시즌 초부터 구단에 다른 팀으로 이적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연봉과 자세를 낮춰서 저를 필요로 하는 팀에 가고 아직은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럴 자신도 있고. 제대로 한번 해보고 스스로 안되는구나 싶으면 그만둘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아직은 제 자신을 믿습니다.”
◇선수협? 후회없다! 아직은…
송진우. 양준혁 등과 함께 프로야구선수협의회를 주도했던 일은 그의 야구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일이 있기 바로 전인 99시즌에 맹타를 휘두르며 타격왕에 올랐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삼성을 상대로 대역전극을 펼치는데 한몫하며 롯데의 간판타자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입바른 소리를 자주 했던 그는 선수협 문제로 구단의 노여움을 샀고 결국 2001년 2월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삼성으로 옮겨가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됐지만. 고향팀을 떠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웠다. “지금도 롯데에 가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삼성에서 FA를 맞았을 때도 불러주기를 바랐어요.”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삼성의 숙원을 풀어준 영웅이었던 그는 왜 삼성을 떠났을까. “제가 설 자리가 없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삼성이 (이)승엽이를 잡고 정수근을 데려오려고 했어요. 그러면 (양)준혁이 형이 지명타자로 옮겨야 하는데 저랑 포지션이 겹치게 되죠.”
그 이후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4년 동안 두 팀에 있으면서 무려 여섯 사람의 감독을 겪었다. “KIA에서 저를 필요로 한분은 김성한 감독님이었는데 6개월만에 물러나셨고 LG에서는 이순철 감독님이 저를 트레이드해갔는데 금세 또 그만두게 되고.”
그는 고향을 떠난 후에도 롯데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부산과 마산 원정을 떠나면 홈관중은 롯데 시절처럼 갈채를 보냈다. 만일 선수협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롯데에 남았을 것이고 지금같은 힘겨운 상황을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직까지는 후회해본 적이 없어요. 선수협 덕분에 선수들의 권익이 많이 개선됐어요. 지금은 선수협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여러 면에서 보람있는 일이었어요.”
그에 앞서 선수회 결성을 주도했던 최동원도 롯데에서 삼성으로 트레이드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뒤를 따라가려고 한 건 아닌데 공교롭게 비슷하게 됐어요. 최동원 선배님이 아직도 롯데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선수회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선배가 먼저 가야 나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회? 믿는다! 왜냐하면…
마음은 답답하지만 FA 덕분에 그는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다. 앞으로 선수생활을 계속해서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도 없다. 그저 야구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던 양준혁이 각종 기록을 세우며 여전히 활약하고 있는 것이 부럽다. 1500경기 출장. 300홈런. 2000안타 등 그는 달성 예상 기록 리스트에 고루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준혁이 형처럼 하고 싶은 생각이 당연히 있죠. 300홈런도 치고 싶고. 2000안타도 얼마 안남았어요. 롯데와 삼성에 있을 때는 계속 그 뒤를 따라갔거든요. 야구에 대한 열정은 누구에게도 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계속 유니폼을 입어야하는 이유죠.”
화려한 시절이 있었던 만큼 지금의 상황은 견디기 힘들다. 부인과 두 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FA가 되고난 다음부터 오히려 야구가 힘들어졌어요. 저도 그렇지만 식구들도 힘들죠. 집사람이 힘들텐데 내색도 안하고 저를 잘 이끌어줍니다. 저 때문에 힘드니까 미안하고 그런데도 힘이 돼주니까 고맙죠. 아이들이 야구에 별로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저도 운동을 시키고 싶지 않아요. 나름대로 솔선수범하고 노력하고 했는데 다른 평가를 받고 기회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공부를 잘하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모든 팀이 세대교체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군대 가는 선수도 있고 FA로 팀을 떠나는 선수도 있을 것이고. 저를 필요로 하는 팀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계속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기회 뿐이거든요. 다시 유명한 스타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어요. 2군에 있으니까 전화도 안와요. 남들에게 잊혀진다는 게 정말 두려워요.”
최정식전문기자 bukra@
씁쓸한 마해영과의 인터뷰 |
지난 4일 구리에서 LG의 2군 홈경기가 있었지만 마해영은 종로에서 만나자고 했다. 요즘 자신의 처지가 처지인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날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훈련까지 마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내로 나오느라 약속시간을 늦게 잡았다.
그는 고액 연봉을 받는 프로야구선수지만 승용차 대신 전철을 애용하는 뚜벅이다. 운전을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운전면허가 없다. 면허가 있으면 혹시라도 음주운전을 하게되거나 교통사고가 나면 운동에 지장이 있을까봐 처음부터 면허를 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잘 알려져있듯 그는 대학 시절부터 영어공부에 열심이다. 지금도 학원에 다닌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리 없다. 그렇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주위의 눈길과 사인 요청을 받는데 익숙해져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TV 화면에 모습을 나타낸지 한참 된 까닭일까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대는 커피숍에서 한시간이 넘도록 앉아 있었는데도 전혀 인터뷰에 방해를 받지 않았다. 웬지 씁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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